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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끝까지!" 무더위에 땀이 비 오듯 흐르고 걸음걸이가 흐트러질 정도로 지쳤을 때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구호를 외쳤다. 장애인 10명과 자원봉사자 10명, 파주시종합복지관 사회복지사 6명 등 26명이 나선 12박13일간의 국토대장정에서 참가자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아닌 동행자로서 함께하고 있었다.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에서 의사표현이 서툰 발달장애인,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들이 이번 대장정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며, 이들 옆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든든히 버티고 있었다. 이렇게 이들 26명은 단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대장정을 완주할 수 있었다.
■휠체어 타도 앞 못봐도… "한계 넘는다.
지난달 20일 시작된 이번 대장정은 '행복한 내일을 여는 로드 넘버 원'이란 주제로 파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 주최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13일간 전남 목포 노적봉에서 출발해 전남 무안군, 광주시, 전남 장성군, 충남 논산시, 세종시, 충남 천안시, 경기 수원시, 안양시 등을 거쳐 파주시 임진각까지 1번 국도를 따라 총 499.1㎞ 거리를 이동했으며 이 중 201.4㎞를 도보로 행진했다.
국토 종단은 첫날부터 녹록지 않았다. 셋째 날까지 이동했던 남부지방에서는 뙤약볕 아래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때이른 더위로 31도를 웃도는 날씨를 겪어야 했다. 6일차, 논산으로 이동할 때에는 대원들의 도보로 인해 길이 막힌다며 몇몇 행인들에게 험한 욕설을 듣기도 했다. 또 체력테스트를 거쳐 선정된 참가자들이었지만, 여정 일주일이 넘어서면서 환자들이 속출했다. 발바닥에 생긴 서너 개의 물집은 당연한 것이 됐으며, 햇빛 알레르기와 허리 통증, 설사병 등을 호소하는 참가자들이 날이 갈수록 늘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포기'란 단어를 내뱉지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여행을 떠나요' 등의 신나는 노래로 분위기를 바꾸며 행군을 이어갔다 휠체어를 타고 이번 대장정에 참여했던 지체장애인 김숙자씨는 "휠체어를 타다보니 국토대장정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는데, 이번에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국토종단에 참여할 수 있었다"면서 "동료들이 없었으면 평생 절대 할 수 없던 일을 해냈다"고 말했다.
이번 대장정의 최고령자였던 시각장애인 옥휘철씨(74)도 "앞을 못보게 된 후 방향을 인지하는 능력이 떨어져 걷는 게 힘들었는데, 이를 이겨보기 위해 도전해보자는 생각으로 참여했다"면서 "대장정 기간 개개인 팀원들 모두 완주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고 설명했다.
각 지역 주민들의 참여도 팀원들의 여정에 큰 힘이 됐다. 8일차에는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한화이글스의 정승진 대표 등 임직원들이 참가자들과 대장정의 여정에 참가했으며, 이에 앞서 논산에서는 정찰대가 이들과 동행하기도 했다. 자원봉사자 이연수씨(42)는 "각 지역의 참가자로 동료가 늘어난 것이 큰 힘이 됐다"고 전했다.
■나누고 배려하는 법 배워…"값진 경험"
하루 7~8시간을 꼬박 걸은 대장정팀은 어느덧 전라도와 충청도를 지나 11일째 되는 날 경기도에 진입했다. 목적지에 다가올수록 참가자들은 시작할 때의 두려움과 고된 일정에서 오는 피곤함보다는 아쉬움이 커져만 갔다.
이번 국토대장정을 기획단계부터 총괄했던 파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의 조숙현 사회서비스팀장은 "참가자들은 이번 여정에서 단순히 걷기만 한 것이 아니라 힘들고 즐거운 일들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서로를 배려하는 법을 배우는 값진 경험을 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토대장정 마지막 날인 6월 1일. 참가자들은 앞선 12일간 그랬던 것처럼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11㎞가량 거리 도보를 통해 마침내 최종 목적지인 파주시 임진각에 도착한 팀원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고마움을 전했다.
시각장애인 심재경씨(57)는 "처음엔 과연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지만 결국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꼈다"면서 "이번 대장정으로 다른 장애인들의 어려움도 알게 되고 서로 배려해주면서 하나가 되는 경험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유석영 파주시종합복지관장도 이번 국토대장정에 대해 "기록 달성보다 함께한 이들이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모습에 의미가 있으며, 장애인들이 지역 주민과 함께 자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longss@fnnews.com 성초롱 조지민 기자